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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 재테크

[ 풍산 화동양행 ] 마젤란의 최초 세계일주 500주년 기념주화

by 제이(J) 2023.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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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로 취미를 하다 보면, 역사와 생활 정보까지 얻게 되는데요,,,

스포츠, 역사 등의 기념이 될 때마다 기념주화나 기념 은메달이 발행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기념 화폐도 발행되기도 하죠~~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올림픽이나 월드컵,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기념하여 월드컵 기념주화로 공인구와 월드컵 트로피 기념 은메달까지 발행이 되었었죠~)
그리고, 제가 포스팅했었던 손흥민 골든 부츠 기념주화, 등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세계 일주 500년을 기념한 기념 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실은,,, 게임 중에서 대항해시대를 좋아하는데요~
이런류의 게임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사실 외관에서 관심이 갔었습니다..

제가 역사에는 관심이 많지 않아서 잘 몰랐지만,,,
과거 스페인 (포르투갈)의 마젤란의 세계 일주를 기념한 기념주화가 발행되었다고 합니다.
세계 일주는 벌써 500주년이다 되었다니 정말 대단하죠~?
그 당시에는 모터도 없었을 텐데 말이죠...
나침반으로만 항해를 하던 시대가 참,,,, 로맨틱했을 것 같아요~

 

출처 : 풍산 화동양행 홈페이지


화동양행 홈페이지에는 달 착륙과 비견될 정도의 모험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요,,
그만큼 어려웠던 과제였던 것이라 의미가 있다고 하는 거겠죠???


1519년 9월 20일 마젤란은 카를로스 1세의 지원아래 자신을 포함해 265명을 태운 5척의 함대를 이끌고 최초의 세계 일주가 될 항해를 떠났다고 합니다.
한 척이 탐험 중 침몰하였고, 또 다른 한척은 무단이탈하는 바람에 1520년 11월 28일 마젤란의 함대는 남아메리카 남단을 돌아, 훗날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마젤란 해협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호 1척만이 1522년 9월 6일 스페인 신루카 항에 도착했는데, 18명만 생존하여 귀국을 했다고 합니다.
항해 중 희생된 인원에게는 안타깝지만,,, 달 착륙에 견줄만한 대단한 사건으로 역사에 남은 사건이 되었죠~
마젤란도 1521년 4월 필리핀 막탄섬에서 사망하여 조국에 돌아오지 못했다고 하네요....

상품 정보는 아래와 같은데요,,
뜻깊은 기념 주화로 스페인에서 발행을 했네요~

발행년도 : 2022년
액면 : 40유로
상태 : BU
품위 : 銀92.5%
중량 : 18g
크기 : 30mm
판매가 : 132,000원
총 발행량 : 1,000,000장

銀 99.9%가 아니라서 좀 아쉽네요~
마젤란 세계일주 기념주화 가격은 13만원대로 품위에 비하면 약간 (?) 비싼 편이기도 한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일주 500주년 기념주화는 의미가 있을 듯 하니,,
관심을 가져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래 역사적인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지식 백과에서 발췌하였으니,, 궁금하신 분은 좀 더 자세히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계 일주와 태평양 및 극동에서 스페인의 패권 장악


1480년에 포르투갈에서 출생한 마젤란은 24살에 포르투갈 최초의 인도의 부왕(副王) 알메이다가 부임할 때에 항해한 바 있었다. 그는 1517년에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결혼한 후, 1519년 8월 10일에 75~110톤급 배 5척의 배에 회계관 및 기록관 등 총 265명의 승무원을 싣고 세계 일주를 떠났다. 그는 출항 후, 카나리아 제도에서 2개월, 12월 13일에 브라질 해안의 리오 만에서 13일을 체류한 후, 12월 27일 플라타 만을 지나 1520년 3월 31일에 산훌리안 항에서 5개월 동안 체류했다. 1520년 10월 18일에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여 11월 28일 태평양에 진입한 후, 3개월 동안의 항해 끝에 1521년 3월 6일에 마리아나 제도를 발견한 후 괌도에서 3일 동안 체류하다가 다시 출항하여 필리핀 군도(群島)의 일부를 발견했다.

그 곳에서 원주민의 폭동으로 마젤란이 죽자, 두아르테 바르보아사와 후안 로드리게스 세라노의 지휘하에 1521년 11월 8일에 빅토리아와 트리니다드호를 출항시켜 티모르를 지나 인도양, 대서양을 횡단하여 1522년 7월 9일에 카보베르데를 거쳐 9월 6일에 18명의 잔류자가 귀국함으로써 마젤란의 미완성 세계 일주가 이루어졌다. 마젤란의 세계 일주로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후부터 카스티야와 포르투갈 사이에는 경제적 이해의 충돌로 문제가 제기되었다. 포르투갈은 일찍이 몰루카(Moluccas)를 소유하여 교역을 강화했다. 그 후, 포르투갈의 후안 2세는 카스티야에서 카를로스 1세의 권리 승계를 시도했다. 이에, 카스티야는 1529년 4월에 사라고사 조약을 체결하여 몰루카의 항행 및 교역권을 획득했다.

그 사이, 누에바에스파냐에서는 페드로 데 알바라도가 태평양 원정대를 조직했다. 그가 죽자, 부왕 안토니오 데 멘도사의 지시로 루이 로페스 데 비얄로보스가 6척의 선단에 400명을 싣고 1542년 8월 1일에 나비다드 항을 출항한 후, 민다나오 섬에 도착하여 다른 섬들을 정복하고 펠리페(Pelipe) 왕자의 이름으로 '필리피나스'라고 명명했다. 그 후, 20년 이상 태평양 항로를 포기했던 스페인은 펠리페 2세 집권 때 누에바에스파냐의 부왕 루이스 데 벨라스코가 다시 1564년 11월 21일에 나비다드 항에서 4척의 선단에 380명을 승선시켜 풍향과 해류 탐사에 나서 괌도에 도착한 후, 74일 동안 2060 레구아를 항해하여 필리핀에 도달했다. 이들이 귀국할 때, 일본을 돌아 캘리포니아를 거쳐 1565년 10월 3일에 아카풀코에 귀항함으로써 필리핀과 교역로를 개척했다.

스페인 왕실과 인디아스 자문 위원회는 필리핀의 소유를 분명히 하기로 결정하여, 1581년에 레가스피가 루손 섬에 마닐라 시를 건설했다. 동시에 1583년에 법원을 설치하고, 다시 1611년에 제3대 도미니크 파 주교인 미겔 데 베르나비데스가 산토 토마스 대학을 설립했다. 따라서, 필리핀은 스페인 선교단의 활동으로 가톨릭 교 문화와 인쇄 시설 등 교육의 확대로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인접 도서 지역들의 문화와는 달리 일찍부터 새로운 문명과 역사 의식 속에서 발전되기 시작했다.

그 밖에도 스페인은 1567년에 알바로 데 멘다냐가 솔로몬 섬에 이르고, 1605년에는 페드로 페르난데스 키로스가 페루 부왕의 지시로 누에바스 에브리다스와 뉴기니 등을 탐험했다. 1665년에 헤수이타 파 선교사들은 라드로네스 섬에서 선교 사업을 벌이고, 1686년에 레스카노가 캐롤라인 제도를 발견했다. 이리하여, 18세기 스페인의 주권은 태평양과 극동에서 필리핀, 마리아나, 캐롤라인, 팔라노 등의 여러 도서에 이르고, 보르네오, 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솔로몬, 산타크루스, 에스피리투산토 등에도 어느 국가보다 먼저 도달했다. 따라서, 남태평양은 사실상 스페인의 내해(內海)가 되었다. 18세기 후반에 들어와 프랑스와 영국이 그 곳에서 식민지를 건설했으나, 그 사이 스페인은 더 많은 원정을 실시하여 태평양상의 수많은 도서를 탐험했다.

필리핀의 지배를 공고히 한 스페인은 중국으로 교역 원정과 외교관들을 파견했다. 그 후, 고메스 페레스 다스 마리냐스 필리핀 총독은 일본과 교역 관계를 수립했다. 당시, 일본에는 스페인 선교단이 건너가 3000명 이상의 가톨릭 교도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 후, 헤수이타 파 선교단의 활약으로 가톨릭 교도 수는 크게 늘어났다. 1582년에 일본은 최초로 외교관을 유럽에 파견했다. 당시, 그들은 헤수이타 파 선교사들을 따라 마드리드에서 펠리페 2세를 방문하고,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영접도 받았다. 그들 중 2명이 귀국하여 1587년에 가톨릭의 포교를 금지하고 선교사들을 추방했으나 침투는 계속되었다. 결국, 1597년에 순교자(殉敎者)들이 속출하고, 1614년에 도쿠가와(德川) 칙령으로 전 일본에서 선교 사업은 끝을 맺었다. 그 이후에도 가톨릭 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어 일본은 완전히 고립되고, 유럽 선교사들과도 관계를 끊었다.

또, 1626~1642년에 대만(臺灣)의 식민화가 시도되었으나, 식민화의 비효율로 더 이상 스페인의 영토 확장은 허용되지 않았다. 루이스 다스 마리냐스 시대에 이르러 필리핀 정부는 캄푸치아에 원정대를 파견하여 왕을 폐위하고 통킹 만 지역 국가들과 통상 관계를 수립했다. 그 후, 만리케 데 라라, 뉴뇨데 타보라와 우르타도 데 코루에카 정부에서 시암(Siam)의 대사들을 영접하고, 동시에 스페인 선교사들을 파견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계 일주와 태평양 및 극동에서 스페인의 패권 장악 (스페인·포르투갈사, 2005. 7. 15., 강석영, 최영수, 위키미디어 커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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